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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에게 필요한 건 복지가 아니라 참여다

 

 

- 유엔 극빈과 인권 특별보고관의 빈민의 참여권에 관한 보고서 (Report of the Special Rapporteur on extreme poverty and human rights, on the right to participation of people living in poverty)

 

극빈자들이 무기력하며 생각할 줄 모르고 의존적이며 그저 하루하루 연명해나갈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는 셈이다. 이런 생각은 빈곤한 사람들이 그들이 의존하고 있는 환경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방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 이런 생각은 극빈자들이 "그래서 나는 누구란 말인가?" 혹은 "저들은 나를 개, 줏대 없는 비겁자, 바보, 불완전한 존재로 여긴다. 나는 정말 줏대 없는 비겁자인가?"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기울이는 필사적인 노력들을 보지 못한다. 극빈자들은 스스로에게 "나는 개도, 바보도 아니다. 그렇게 규정된 것이다. 나는 세상을 (세상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을) 이해한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를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끊임 없이 말하면서 고통스러운 노력을 통해 스스로에게 덧씌워진 정체성과 세상의 의구심으로부터 벗어난다.

- 조셉 레신스키(Joseph Wresinski)의 연설 중에서

 

빈곤의 얼굴은 어둡다. 빈곤한 사람들 대다수가 힘겨운 노동이나 의식주의 부족을 겪으므로 물질적 여건에서 비롯된 외양이라 볼 수도 있지만, 빈곤이 궁극적으로 박탈한 것은 자유일 것이다. 우리가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낄 때는 무언가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우리를 구속한다고 여겨질 때인데 늘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선택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 빈곤의 특징이다. 빈곤한 사람들의 좌절감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오래 지속적으로 체감해왔다는 데 있다. 물론 이러한 좌절감에는 국가나 기업, , 일터 등 삶과 관계된 모든 장소에서 사회가 그들에게 행사하는, 발언권의 박탈이나 무시 같은 사회적 폭력도 포함되어 있다.

 

앞에 인용된 글은 세계 빈곤 퇴치의 날을 최초로 만들었고 평생 빈곤 운동에 헌신했던 조셉 레신스키 신부가 1980년 유네스코에서 했던 연설 중 한 대목이다. ‘세계 빈곤 퇴치의 날이란 이름이 더 많이 알려졌지만, 연설문을 보면 빈곤은 단순히 퇴치하여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빈곤한 사람들의 스스로 일어설 자유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 운동가의 철학을 알 수 있다. 비슷하게 쪽방촌에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살며 빈곤 운동을 하는 활동가도 빈곤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빈곤을 근절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주민들이 빈곤한 상황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도록 도우며, 고립된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공동체를 회복함으로써 이분들이 조금 더 행복하다고 느끼도록 돕는 것이 운동의 목표라고 했다.

빈곤에 처한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오래 지켜본 사람들이 느낀 빈곤한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물질적 여건의 개선보다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자유, 권리의식임을 전달한 메시지였다.

 

올해 3월 막달레나 세풀베다(Magdalena Sepulveda Carmona) 유엔 극빈과 인권 특별보고관(Special Rapporteur on extreme poverty and human rights)이 제출한 보고서는 바로 극빈자들의 참여권 보장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2012 9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최초로 극빈과 인권에 관한 일반원칙이 채택된 후 현재까지 극빈과 인권에 관한 특별보고관의 보고서 2개가 작성됐는데, 먼저 나온 것이 극빈자들의 사법 접근권에 관한 보고서였고, 가장 최근의 것이 바로 극빈자들의 참여권에 관한 보고서이다. 두 보고서 모두 빈곤한 사람들의 스스로 권리를 찾을 권리, , 자율권과 관련이 있다.

 

 

 극빈과 인권에 관한 특별보고관 막달레나 세풀베다 

 

특별보고관은 극빈자들의 참여권에 관한 보고서 서두에서 국제사회는 정책 결정 과정 혹은 시민적·사회적·문화적 삶에 대한 참여 기회의 박탈을 빈곤의 결과이기보다는 빈곤의 특징이나 원인으로 본다.”고 밝힌다.

 

빈곤한 자들이 세 들어 사는 집에서 쫓겨날 때 의견을 표현할 권리, 개발 계획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개념은 우리 사회에서 무척 낯설다. 사회가 빈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당사자들의 게으름이나 무능을 탓하는 정서가 있어 극빈자들이 당사자성을 내세워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누군가 좋은 의도로 빈곤한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한다고 할 때조차 그들의 의견은 종종 무시된다. 일례로 빈곤 시찰단이 슬럼가를 방문 조사할 때 거주민들은 사전 허락 없이 자신들의 삶의 공간을 보여줘야 한다. 빈곤 국가로 갈 것도 없이, 가장 가까운 예는 개발과 도시정비란 명분 하에 폭력적으로 자행되는 강제 퇴거 현장일 것이다. 이렇듯 빈곤한 사람들의 참여권 박탈이 당연시되고 이는 지속적으로 되풀이된다. 특별보고관은 참여는 단지 빈곤을 근절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근본적인 인권이자 자기 결정권, 인권 의식, 의견 표명권, 역량 강화 같은 권리들의 실행이라는 가장 중요한 결과를 내포하고 있기에 중요하다고 말한다.

 

빈곤층에 관한 결정을 내리면서 허울상 당사자들의 선택권을 존중해 주기도 한다. 현재 영등포 쪽방촌은 대부분 철거됐는데 그 시작은 녹지조성이라는 명분이었다. 그러면서 도시계획시설사업으로 철거되었으므로 세입자들은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지만 선택의 폭은 극히 좁았다. 쪽방 주민에게 주거이전비 420만 원, 혹은 공공임대주택 입주권이라는 두 개의 옵션이 주어졌다. 그러나 임대주택 입주권은 임대보증금이 비싸 대부분의 주민은 420만 원이라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을 받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야 했다.

이는 극빈자들이 계속해서 일반적인 삶에서 밀려나게 되는 악순환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는 참여의 배제라는 전형적인 메커니즘이 있다. 달동네, 쪽방촌을 위시한 빈민촌 철거는 대부분 도시정비 혹은 개발을 명분으로 이뤄지는데 이 사업에서 빈민들의 복지가 첫째 목적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게다가 영등포 쪽방촌의 경우와 같이 도시계획시설사업이란 명분이 있다 해도 쪽방촌 세입자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려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빈민운동 연대체인 주거권 공동행동은 관련 책자에서 쪽방이라는 저렴주택을 주거자원으로 인정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쪽방촌 주민들을 위한 결정은 건물 증축이나 개조가 아니라 빈민의 마지막 주거 선택지인 쪽방을 인정하는 것이다. 의견이 없는 사람들, 견해가 있다 하더라도 가난하기에 입장을 묻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바로 빈민들이다.

 

극빈과 인권 특별보고관은 이 보고서에서 참여권이 담고 있어야 하는 요소들 몇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존엄과 자율권, 빈민들의 대리권(주로 시민 사회의 역할)에 대한 존중, 둘째는 참여권이 빈민 중에서도 여성, 노인, 장애인, 소수민족 등 여러 층위에서 차별 없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비차별의 원칙이며, 셋째는 정보의 투명성과 정보 접근권이다. 정책 관련 정보는 가장 빈곤하고 취약한 계층에게도 열린 방식으로 제공되어야 하는데, 문맹이나 언어 장벽 같은 장애물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 요소는 책임성이다. 빈곤한 사람들의 참여는 정책적 옵션이기보다 법적 책임의 형태를 띠어야 한다. 특별보고관은 종종 다수 빈민의 참여권이 현실적 어려움을 이유로 무시되곤 하는데, 현실적 어려움은 참여 배제의 이유가 될 수 없으며 빈민들의 참여권이 강제성을 띠고 보장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섯 번째 요소는 역량강화(empowerment). 빈민들의 역량강화야말로 참여권 보장의 궁극적 목적이라 할 수 있다. 특별보고관은 참여는 단지 의견을 도출하기 위한 도구가 아닌, 그 자체로 빈곤한 사람들의 역량과 사회적 자본, 자긍심, 권리의식, 지식을 구축한다는 목적을 띠고 있어야 한다.”고 역량강화의 의미를 밝힌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사회에서 빈민들의 참여권은 몇 차례 의견을 표현할 기회 혹은 단순히 마찰을 줄이기 위한 협상에 국한되어 있다. 누군가의 능력이 신장된다면 그 계기는 자기 상황에 대한 인식, 분노하고 말할 기회의 회복일 것이다. 빈민의 역량강화란 어느 빈민 운동가의 말처럼 빈민들 사이의 관계 회복일 수도 있고 자기 만족감의 증진일 수도 있다. 방식은 다양하겠지만 중요한 원리가 있다면, 빈곤한 사람들에게도 자율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통제할 만큼의 개인적·사회적 자원이 주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세계 빈곤 퇴치의 날을 만든 조셉 레신스키 신부는 앞서 인용된 연설에서 모든 인간은 탐구자다. 자신과 자신의 상황에 대한 이해를 통해 독립성을 찾음으로써 운명에 단지 순응하거나 두려워하기보다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빈곤과 소수자를 위한 복지에 대해 사회는 당장 그들에게 필요한 물질적 여건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같은 사회의 시선을 순응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점점 더 절망하는 빈민들의 심정을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빈곤한 사람들에게 사회의 일원이 되어 참여할 권리를 찾도록 그들의 발 밑을 북돋아 주는 것이 인권적 관점에서의 지원일 것이다.

 

*참고 자료

http://daccess-dds-ny.un.org/doc/UNDOC/GEN/G13/117/94/PDF/G1311794.pdf?OpenElement

 

http://www.atd-fourthworld.org/IMG/pdf/0821366254_Participatory_Approaches_to_Attacking.pdf

 

 

 

 

 

출처 : http://www.kocun.org/v1/load.asp?sub_p=board%2Fboard&b_code=34&idx=404&board_md=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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