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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으로 읽어서 페이지를 첨부할 수 없었다. 목수정의 파리의 생활 좌파들 중 인상적인 구절들...)​



“그것은 바로 활동가 생활이 내게 준 선물이지. 대학은 굳은 지식을 전하는 곳이야. 거기서 배운 지식은 사람들을 해방시키기보다 가두는 경우가 더 많아. 하지만 운동가는 자신이 꾸는 꿈과 현실에서 마주하는 문제들로 인해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하고 방법을 모색하게 되지. 토론하고 선언하고 실천해 나가면서 온전히 우리에게 피와 살이 되는 지식과 지혜를 삶 속에서 얻고, 그것은 우리를 더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해방의 열쇠를 제공하지. (···) 그러니 질문을 멈추지 말 것. 질문의 노마드(nomad: 유목민)로 계속 살아가는 것. 그것이 활동가의 첫 번째 사명이야.”


어머니는 나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자본가들에게 좋은 것을 다 주지 마라. 우리가 그것을 가져야 한다. 세상의 아름다운 모든 것은 네 것이다. 아름다운 정원을 보았을 때 주저하지 말고 문을 열고 들어가라. 누가 ‘거긴 네 정원이 아니다’라고 말하거든 이렇게 대답해라.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은 모두의 것이라고.” 나는 어머니의 말대로 행동했다.


흔히 일상에서의 실천을 말하는 사람들과 혁명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만 고수하려 한다. 내가 보기에는 반드시 이 두 가지가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을 변혁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이해해야 할 한 가지는 세상을 바꾸기 전에 자기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각자 스스로를 변혁할 수 있어야 세상도 변혁할 수 있다.
세상을 변혁하는 것이 이다지도 힘든 이유는 개개인이 자신을 변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존재의 감옥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을 변혁하는 것이 힘든 것이다. 16세기 모럴리스트 라 보에시Étienne de La Boétie가 《자발적 복종Le Discours de la servitude volontaire》에서 한 말을 되새겨보자. “독재자가 그토록 커 보이는 것은 우리가 그의 무릎 아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어선다면 더 이상 독재가 없을 것이다.”


좌파란 시간을 더디게 흘러가게 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움직임을 거부하는 것과는 다르다. 우파는 모든 삶을 속도에 대한 강박 속에 날려버린다. 좌파는 시간을 갖고 삶을 음미하며, 이른바 개발과 발전이라는 강박으로부터 삶을 되찾아오는 싸움을 한다. 또한 좌파는 끊임없이 세상의 구조, 세상이 굴러가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다수에 맞서 소수를 대변하며, 지속적으로 우리를 둘러싼 삶의 조건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자신을 일깨우고 탐구하는 사람들이다. 예술은 삶의 잉여물이거나 사치품이 아니라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나는 사고를 통해서 급격히 깨달았지만 서서히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소비사회의 허무를 깨달을 거라고 믿는다. 더 이상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이미 지구상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생산돼 있다. 5년 안에 고장 나도록 설계되는 가전제품, 6개월 안에 다른 옷을 사도록 만들어지는 허름한 천들. 이제 자본주의사회는 엔지니어들에게 이런 기술을 요구한다. 사람들이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낭비하게 하는 그런 기술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산된 물건을 자신의 특정한 직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산다. 집 안을 채우는 모든 물건을 돈으로 사고 모든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는 인간은 실제로 얼마나 무능하고 무력한 존재들인가.

자연에 가까이 사는 사람들일수록 손으로 직접 해결해내는 일이 많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그들은 자본에 덜 종속돼 있었고, 더 많은 지식을 손에 지니고 있었다.


좌파는 소수자를 비롯하여 우리 모두가 함께 가지고 누려야 하는 권리에 대해 결코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다. 또한 정의롭게 작동하는 시스템과 시장에 복종하지 않는 하나의 평화로운 유럽을 열망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지금 쉽게 반동주의자가 될 수 있는 시절을 살고 있다. 이런 시절에 좌파란 지금까지 싸워 획득한 근본적인 권리를 양보하지 않는 사람들일 것이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사회적 권리와 보다 정의로운 사회는 그동안의 투쟁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열매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역시 좌파의 몫이다.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저항과 희망을 위한 분투에 세심하게 반응하며, 우리의 민주주의가 세계 각지의 저항에 의해 영감을 받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 이 또한 좌파에게 부여된 사명이다.


엠마누엘에 따르면 좌파는 추락을 거부하는 사람이다. 좌파는 자신들이 수호해야 할 권리가 무엇인지 철저히 아는 사람들, 그 권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기억하고 그것을 지킬 무기를 단단히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의 존엄을 송두리째 부숴버리려고 달려드는 세력이 나타날 때마다 최전방에 선다. 그런 좌파들이 세상의 다수였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좌파로 불리는 것이다. 그들이 다수가 되는 순간 우파로 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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