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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되겠지

001 소멸과 소생

hyeminist 2017. 2. 25. 01:15

 

작년 이맘때였다. 갑자기 울음보가 터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뜨자마자 눈물이 흐르고, 밥을 먹다가 눈물이 흐르고, 회의를 하다가 눈물이 흐르고, 버스를 타고 가다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이 흐르고, 도림천의 산책하는 강아지들을 보다가도 눈물이 흐르고... 내가 마시는 물보다 더 많은 물을 눈에서 흘려보내는 것 같단 생각을 했다. 그 즈음 함께 일하는 동료들로부터 많은 위로와 보살핌을 받았는데, 그때 한 동료에게 다육이 몇개를 분양받았다.


부천에 살 때는 방에 해가 들지 않아 아침이 오는지 벌써 날이 어둑해졌는지도 알지 못하는 나날을 보냈었다. 잠을 오래 자고 일어나도 몸이 찌뿌둥하고, 하루종일 늘어지는 기분이 별로였다. 그리고 2년 뒤, 혼자 살기를 결심하고 집을 구하며 나에게 가장 중요한 집의 조건은 '햇살'이었다. 집은 좁아도 좋고 낡아도 좋으니 부디 해가 잘 드는 집이기를 바라며 신림 일대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언덕배기의 관악산이 보이는, 정남향의 엄청난 햇살이 쏟아지는 집을 구하게 되었다.


우리집에 온 다육이는 여름이건 겨울이건 쏟아지는 햇살 아래에서 쑥쑥 자랐다. 너무 잎이 무성해진 다육이는, 잎을 한두개 떼어내서 흙에 살포시 얹어놓으면 금새 뿌리를 내리고 새로 자라곤 했다. 선인장도 다육이도 꽃을 피우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거나 외출을 하고 돌아온 뒤에는 다육이부터 확인했다. 새순이 얼마나 자랐는지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오늘도 여유롭게 아침을 보내며 다육이들을 보는데, 얼마 전에 뜯어 심어놓은 잎의 색이 너무 예뻐 잠시 꺼내 사진을 찍어봤다. 통통했던 초록잎은 끝부터 까맣게 물들고 말라가며 저 아래 새로운 뿌리들로 영양분을 보내고 있었다. 하나의 잎이 뿌리를 내리고, 한송이 다육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저 파란 잎은 끝부터 까맣게 말라가며 아마 한달 안에 바싹 말라 흙에 뿌리내려 거름이 될 것이다. 다육이를 키운지 얼마 안되었을 때는 흙 아래에서 뿌리가 자라고 있는지도 알지 못해서 그저 잎이 말라죽어가는 것 같아 속상해하기도 했다. 분명 잎을 떼어서 심어놓으면 새로운 다육이가 자란다고 했는데, 왜 난 안되는걸까 하면서.

 

                 

 

그렇게 한참을 다육잎 하나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다른 화분들을 보니, 내가 심어놓은 다른 다육잎들이 눈에 들어왔다.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말라가고 있었다. 똑같이 잎을 하나 하나 뜯어 흙에 꽂아놓은 건데, 어째서 이런 차이가 생기는걸까. 아마 이미 영양분을 잃어가고 있는 잎을 떼어 심었기 때문에 뿌리를 내릴 영양분이 부족해서 그냥 말라버린 건 아닌가 싶었다. 아니라면 뿌리를 내리기 위해 필요한 물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정확하게 이유를 알 순 없다. 하지만 내가 잎사귀를 뜯어서 꽂아놓은 다육잎들의 70퍼센트 정도는 저렇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말라서 바로 거름이 되어버리곤 한다. 그리고 때론 정말 신기하게도 따로 잎을 떼어 심지도 않았는데 새순이 돋는 경우도 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한시간 전 즈음만 해도, 난 뿌리를 내린 저 다육이에 맘이 꽂혀있었다. '이 녀석의 지금의 시간은 소멸의 시간일까 소생의 시간일까', '과연 이 세상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는 온전한 의미의 '소멸'이란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등등 하고서 말이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며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말라버린 저 잎들이 찍힌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고나니, 이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이들 또한 소생의 시간을 겪는 듯 느껴졌다.


인간의 삶도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나의 요즈음과 오버랩이 되었다. 나의 육체와 정신이 정말 저 사진 속 다육잎처럼 말라 비틀어져만 가는 것 같은 느낌에 아 이제 모든 것이 끝나버렸구나 싶기도 했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어느 시집의 제목처럼.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가 너무 당황스럽고 억울하고 막막해서 우리집 언덕을 오르며 꺼이꺼이 우느라 도중에 몇번이고 쉬다가 집에 오게 되던 날들도 있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 다양한 시도들을 자유롭게 펼쳐볼 수 있는 이런 좋은 조건의 공간에서도 잘 지내지 못하면 그럼 난 어디가서 누구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막막했다. 그래서 이 공간과 이 관계가 끝이란 생각이 드니까, 삶을 이어가는 게 너무 버겁게 느껴져서 그냥 다 포기하고 싶단 생각이 드는 날도 있었다. 난 정말 내가 말라 죽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조그마한 자극에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심장이 벌렁거리고 숨이 차고, 이 모든 것들이 너무 무서워서 눈물이 쏟아지고 잠 마저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나날들에는, 아침에 눈을 뜨면 벌써 또 하루가 시작된다는 것이 버겁고 무섭게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다육이를 키우던 초반에 새로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죽어버렸다며 상심하던 순간, 며칠 뒤 바로 그 위에서 작고 연한 새순을 확인하던 순간, 아무런 계기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새순이 돋는 걸 확인했던 순간, 그리고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말라버린 다육잎마저 거름이 되어 다른 다육이들이 생존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되어준다는 것을 확인한 지금 이 순간들을 떠올리며 '아무렴 어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 완전한 소멸이란 없다. 오늘 저 다육이들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분명 이 시간들이 나에게 말하고픈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고. 이 몸과 마음의 신호들을 잘 알아차리고 잘 톱아보며 다시 새로운 뿌리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거라고.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의 진심을 좀 더 믿어보자고.



(시와 _ 당부)

 

/ 2017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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