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170507 (비냐까자르데시르가-레온)

사실상 까미노의 마지막날이었던 오늘. (여전히 고민이 된다. 내일 아침에 눈을 떠서 결정해야지!) 까리온까지 6키로 남짓을 아주 천천히 걸었다. 첫날 피레네를 넘던 날처럼 하늘에 구름한점 없이 아주 화창했다. 이틀전까지만 해도 까미노를 그만 걷는 것에 대해서 아쉬움이 전혀 없었는데, 어제부터 맘이 흔들린다. 사람들에게 그만 걸을 거라고 얘기하고, 또 그들의 놀라고 아쉬워하는 반응들을 보면서 더 고민하게 된다. 나보다 훨씬 아프고 고통스러워하는 그들은, 왜 걸을까 이 길을...

까리온에서 7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바에 앉아서 휴대폰을 충전하면서 톡투유를 봤다. 그나마 내가 좋아하는 TV프로그램이다. 동양인 여자애가 혼자 바에 앉아서 영상을 보며 울고 웃는 모습이 얼마나 이상해보였을까 싶지만, 암튼 톡투유는 심심한 내 여행에 소금같은 존재. ㅋㅋ 그리고도 너무 심심해서 다운 받아 온 팟캐스트를 들었다. 마침 혼자하는 여행에 관한 팟캐스트가 있어서 흥미롭게 들었다. 혼자하는 무언가의 최고봉! 혼자 걷기 혼자 밥먹기 혼자 자기 혼자 공연보기 등등. 아무튼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고 또 행하면서 본인의 욕구에 가장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혼자 여행하는 순간이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스스로와 대화를 충분히 나눌 수 있는 시간. 그 팟캐스트를 듣다보니 나의 심심함도 괜히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심심함의 순간을 잘 보내고도 싶다고 생각했다. 읽을 책이 있거나 자수를 놓을 수 있다면 더 좋았겠다 싶긴 했지만...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가 버스를 타고 레온으로 넘어왔다. 레온에 도착해서 내일 산티아고로 가는 버스티켓도 사고 산티아고 호스텔도 예약했다. 레온은 엄청 큰 도시다. 그래서 알베르게까지도 30분 가까이 걸어야 했다. 알베르게에 들어가기 전에 출출해서 건너편의 식당에 갔다가 까미노에서 몇번 마주쳤던 한국인 친구도 만나서 함께 식사를 했다. 느리게 걷고 중간에 버스도 타고, 내 속도가 평범하진 않은데 자주 마주치는 게 신기한 인연이다. 오늘은 한 게 별로 없는데도 괜히 피곤해서 빨리 잠자리에 들었다.

지난 3주 남짓의 까미노를 돌이켜보면 역시나 사람들이 떠오른다. 다양한 사람들을 열린 마음으로 밝은 미소로 사귈 수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었을 멀고 먼 곳에 사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툭툭 털어놓으며 함께 보조를 맞춰 걷던 시간들. 굳이 함께 걷자 이야기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 함께 걷고 있고 또 헤어짐을 아쉬워하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다리가 아프진 않은지 서로 보살펴주기도 하고. 그이들 덕분에 혼자이지만 외롭지만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삶, 나의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들으며 나와 더 깊이 관계 맺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주는 이들에게 감사했다.

부끄럽지만 나의 오만함을 마주하게 되기도 했다. 난 뭔가 특별하게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빠져있지는 않았나 싶었다. 까미노를 걸으며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삶을 아주 진지한 태도로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나의 어리석은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그들은 처음보는 나에게 마음 깊은 곳의 고민을 터놓으며 눈물짓기도 했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사람들과 더 적극적으로 그리고 더 겸손하게 관계 맺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난 내일 리스본에 갔다가 다음주에 이탈리아에 갔다가 한국으로 귀국하려 한다.

'뭐라도 되겠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051 솔직함  (0) 2017.05.11
050 갈팡질팡  (0) 2017.05.09
048 새로운 세상  (0) 2017.05.06
047 함께 걷는 길  (0) 2017.05.06
046 헤어짐  (0) 2017.05.06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