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10 1. 문득 달력을 보니 4월 10일이다. 내가 한국을 떠난지 딱 한달이 되는 날! 그 기념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그간 덥수룩해진 머리카락도 짧게 잘랐다. 한달... 벌써 한달이라니. 정신없이 그 시간들이 지났다. 첫 유럽여행이라 서툴어서 힘든 순간들도 있었지만 어쩌면 그런 새로운 '정신없음'이 나에게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여행 초반에 떼제에 가거나 까미노를 걸었더라면 뭔가 우울하고 힘든 생각들을 놓지 못했을 것 같다. 근데 아무래도 여기저기 여행을 하려면 정신을 다른 곳에 쏟아야 하니까, 내 영혼을 활동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에는 훌륭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떼제로 이동한다. 떼제에서 일주일간 머물고 까미노를 걸은 뒤에 시간이 남으면 리스본에 가고, 그..
, 일자 샌드, 중에서- 나는 나 자신이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걸 인정한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는 남들보다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 당신은 아마도 “지나치게 걱정하지 마”, “더 강해져야 해”, “남들처럼 즐기는 방법을 배워”라는 말을 수없이 들으며 살아왔을 것이다. 달라져야 한다고 끊임없이 부추기는 세상에서 당신은 남들보다 민감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타인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자기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 “극도의 민감성은 인격을 풍요롭게 만든다. 단지 비정상적이고 어려운 상황에서만 이러한 장점이 매우 심각한 단점으로 바뀐다. 그것은 민감한 사람들의 침착하고 신중한 성향이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인해 혼란을 겪기 때문이다. 그..
1. 여기는 취리히 공항. 여기서도 오버부킹이 되서 ㅠㅠ 엄마는 먼저 파리로 떠나고 홀로 공항에 남아서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엄마와 여행한 지 열흘 즈음만에 혼자만의 시간!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식사티켓과 한화로 30만원정도를 보상해주니 나쁘지 않다. 두번째 오버부킹이라 어느정도 익숙하기도 하고, 돈을 생각보다 많이 줘서 아주 감사한 마음. ㅋㅋ 2. 스위스에서는 제대로 된 글을 한편도 못 올렸다. 체르마트에서 열심히 적은 글이 올리는 순간 에러가 나서 날라간 뒤로 아이패드로 글 적는 것에 대해 아주 작은 분노가 일었다. 처음이 아니기 때문었다. 그리고 노트를 꺼내서 열심히 글을 적었다. 그러면서 내가 노트에 적은 글을 블로그에도 올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난 아직 온라인 공간엔 ..
20170401 1. 어제는 성과 관련된 글을 적고 싶어서 적었는데 왠지 공개할 자신이 없어서 비공개로 남겼다. 공개하는 글을 적는 연습을 하고 싶어서 블로그를 만들었던 것인데... 그러면서 생각했다. 요즘 나의 일상에서 굉장히 중요한 화두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그 글을 비공개로 올렸나. 뭐 이유야 많겠지만, 언젠가는 그런 글도 공개로 올릴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2. 오늘은 산티아고에 갈 때 필요한 물건들을 사러 돌아다녔다. 비도 오고, 여행이 길어지면서 약간 체력도 딸리고, 생리까지 겹쳐서 무지 고단했다. 신림동 집에 다 있는 물건들인데 돈 주고 사려니 너무 아까워서 기분도 썩 좋지 않았다. 계속 짐은 늘어나고 돈은 떨어져가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컸다. 이동할 때 너무 힘드니까 ㅠㅠ 이렇..
20170329 수요일 오늘은 볕이 매우 좋고 날이 맑았다. 얇은 셔츠를 하나만 걸쳤는데도 따스했다. 올 봄은 스페인에서 맞이하는구나 생각하면서... 문득 매해 봄마다 괜히 우울해지던 날들이 떠올랐다. 날이 따뜻해진다고 사람들은 즐겁고 신나고 행복해보이는데 나만 아직 겨울인 것만 같은 기분이 영 반갑지 않았었다. 그냥 난 원래 조금 이렇게 어둡고 우울한 인간인가보다 생각하며 몇해를 살았는데, 우울증이니 뭐니로 병원을 들락거리며 검색해보니, 나같이 그런 걸 보고 '계절성 우울증'이라고 부르기도 하더라. 참 별것들에 다 병명을 붙이는구나 싶다가도 아 난 정말 정신적이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구나 싶다가도. 아무튼 별별 생각들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올 봄은 낯선 곳에서 맞이를 해서 그런지, 여..
20160328 화요일 1. 오늘은 세비야에서 그라나다로 넘어왔다. 여기서는 이틀을 묵을 예정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캐리어도 몸도 무거워져서일까. 지역을 옮기는 건 역시 피곤하고 힘들다. 오늘 그라나다에 도착해 동네 산책을 하면서도 이틀 뒤에 이동할 일이 걱정이 될 정도로 이동이 피곤하게 느껴졌다. 분명 여행 계획을 내가 짰는데 좀 더 여유롭게 짤 걸 싶었다. 엄마가 갑자기 함께하게 되면서 스위스와 프랑스가 일정에 추가되는 바람에 더 촉박해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여행을 이어가면서 생각하는 건 난 적어도 한 지역에 5일 정도 머무는 여행이 좋다. 체력적으로도 그렇고, 사람 많은 관광지를 쫓아다니며 사진 찍는 일에는 영 관심이 없기도 해서 더욱 그렇다. 여유롭게 동네 산책도 하고, 맛있는 식당이나 카..
(메모장에서 3월 11일에 상하이 공항에서 적었던 글을 발견했다. 어쩌다보니 글의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어버렸지만 어쨌든 썼던 글이니 올리기로.) 20170311 토 여기는 상하이 푸동공항이다. 두달여간의 유럽 여행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중국남방항공인 줄 알았는데, 중국동방항공 티켓이라 아침에 좀 헤맸다. 인천에서 상하이까지는 2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비행기 안에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한국인 같았다. 여행준비가 늦어져서 뒤늦게 짐을 싸는 바람에 어젯밤에 잠을 거의 못자서 창가 자리에 앉았건만 밖은 거의 보지 못하고 잠만 잤다. 비행기에서 나오는 점심도 겨우 먹었다. 영어도 잘 못하는데다가 혼자서 외국에서 환승은 처음이라 긴장을 많이 했는데 무사히 마드리드행 비행기를 타는 곳 앞으로 왔다. 이제 한국말이 ..
여행을 시작한 지 딱 2주가 흘렀다. 지금 여기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세비야. 오늘은 비가 오는 세비야를 누볐다. 엄마와 함께하는 여행의 여정 중에 가장 길게 (4일) 머무는 지역이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밥을 만들어먹고, 빨래도 하고 느즈막히 숙소를 나섰다. 세비야 성당을 한참동안 둘러보고 산타크루즈 동네를 돌아다녔다. 하얀 리스본에 온 느낌이었다. 하얀 벽의 건물들에 여기저기 예쁘고 화려한 문양의 아줄레쥬와 화분들이 어우러진 동네였다. 숙소도 마침 산타크루즈 지역의 오래된 전통 아파트라서 마치 이동네의 주민이 된 마냥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지금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식사와 와인을 즐기는 노천바에 와서 글을 쓰려고 앉았다. 원래는 오늘 엄마와 스냅사진을 찍으려고 했었는데 비가 와서 취소를 하게 되..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에그타르트 가게라는 곳에서 에그타르트를 사서 상 페드루 전망대로 갔다. 에 나왔던 그 언덕. 이곳에 오르면 리스본의 전경이 모두 펼쳐져 보인다. 마침 파두를 부르는 뮤지션이 있어서 그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한참이나 파두를 들었다. 출출함이 느껴질 땐 아까 샀던 에그타르트를 먹었다. 공기의 온도, 내음, 그리고 파두 음악소리, 거기다 눈앞의 풍경까지. 사람들이 왜 여행지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이런 분위기와 풍경과 느낌을 혼자서만 누린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쉬웠다. 그렇게 한 두시간 정도 앉아있으니, 하늘은 점점 어둑해지고 저녁이 되었다. 두어시간 즈음 공원의 가운데 쪽에 앉아 있다가, 이제 떠나려고 자리를 일어났다가 전망대를 산책했다. ..
10주 정도의 이번 여행은 크게 세개의 텀으로 구성되게 되었다. 첫째는 혼자 했던 포르투갈 여행. 그리고 둘째는 엄마와 함께하는 스페인 스위스 여행. 셋째는 떼제와 에코로니, 티메라로의 공동체 여행. 화요일에 엄마가 마드리드에 오면서 두번째 텀이 시작됐다. 엊그제는 밤늦게 공항에서 만나서 숙소에서 잠만 잤고, 어제는 마드리드 왕궁 등 관광을 좀 했다. 그리고 오늘은 똘레도로 넘어왔다. 당연히 예상했지만, 역시나 혼자 여행할 때와 조금 (많이) 다르다. 혼자 여행을 할 때는 길을 헤매는 것도 맘 편히 여행의 일부로 삼을 수 있었고, 만약 날이 조금 흐려도 '아, 흐린 날의 리스본을 느껴볼 수 있구나' 라며 느긋하게 맘을 먹을 수 있었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