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 너무 예민해졌던 시기에는 꿈에서 다음날 일정을 미리 겪을 정도로 깊이 잘 수 없었다. 아침에 못 일어날까봐, 그래서 지각을 하거나 일정에 차질이 생겨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너무 긴장을 해서 새벽에 한두시간에 한번씩 깨고는 겨우 다시 잠들곤 했다. 앞서 말한 내가 우려하는 상황들이 꿈에 펼쳐지니 도무지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떨 땐 자다 깨서 너무 억울해서 울기도 했다. 아니 왜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나요 하면서 ... 일을 쉬고 제일 좋은 것은, 알람을 맞추지 않고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내가 꼭 해내야 하는 일이 많지 않으니 힘든 꿈을 꾸는 날도 많지 않다. 그러니 당연히 중간에 깰 때도 적고 깊이 잘 수 있어서 그런지 신기하게 엄청 일찍 일어난다. 물론..
본격적으로 휴가를 가지게 된 지 2주가 지났다. 여행 준비며 스페인어 공부며 운동이며, 이것저것 부지런히 하다보니 하루도 제대로 쉬지를 못했다. 그래도 삼시세끼를 챙겨먹고 밤에 일찍 그리고 규칙적으로 자는 패턴을 가지게 되어서 부쩍 건강해졌다. 약 덕분인지 감정기복도 훨씬 덜해졌고, 날 가장 불편하게 만들던 심장벌렁거림도 많이 줄었다. 음, 이럴 때 쓰라고 이런 표현을 만들었나보다. 나 정말 살만하다. 2주만에 살도 조금 쪘고, 피부도 좋아졌다. 몸과 머리의 묵직한 기운도 많이 사라졌다. 정말 다행이다. 아무튼 이래저래 여행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이게 참 끝이 없다. 두달 남짓 떠나는 일정이다보니 살 것도 은근히 많고 갑자기 엄마와 동행하는 일정이 생겨서 더 챙길 것이 많아졌다. 음, 오래전부터 느..
엄마는 교회에 가고, 아빠가 나에게 집 뒤 저수지 주변을 산책하자고 제안했다. 아빠와 단둘이 산책이라니 말만 들어도 너무 어색하고 긴장이 되었다. 알겠다고 답을 하고 옷을 갈아입는데 아빠가 이어폰을 챙겨달라고 부탁했다. 둘이 함께 산책을 하는데 이어폰이라니, 어찌보면 참 이상하지만, 난 내심 안심을 하며 이어폰 두개를 챙겼다. 앨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부터 우리는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하하하... 집까지 돌아오려면 아마 두시간은 걸릴텐데, 아빠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두시간이 너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엄마는 왜 교회에서 늦게 돌아오는지 원망하는 맘이 살짝 들 정도였다. 둘다 귀에 이어폰을 꼽고서 한참을 걷다가 어쩌다 아빠가 이번에 새로 계약한 집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여수로 이사..
미움과 분노로부터는 진정한 진보가 나올 수 없습니다.다만 투쟁 끝에서 수명이 짧은 승리만이 가능할 뿐입니다. 지배권력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은지배구조를 철폐하거나 탈취하는 방식이 아니며사실 그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지배권력은 반드시 존재하며피지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지배층의 몰락은 피지배층의 몰락과 결부되어 있거나피지배층을 지배층으로 탈바꿈시키면서 반복됩니다. 그러므로 지배권력을 끌어안아 그 범위를 넓히거나권력의 한계를 깨달아 권력을 견제하는 권력을 끊임없이 재창출하는 방식만이불완전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그나마 가능한 해방의 과정입니다. 해방은 없고 다만 해방의 과정만이 존재합니다.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반복되어야 하는 것이지요.반복을 지향하는 순간이 가장 해방적인 순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브런치에 글을 쓰다가 낯선 시스템에 적응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지난 글들을 모두 티스토리로 옮김) 휴직을 하고 좋은 점 중 하나는 친구들과 연락하거나 종종 만나는 일이 즐거워졌다는 것이다. 일을 할 때는 너무나 바쁘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고, 또 계속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보니 쉴 수 있는 시간엔 무조건 혼자 있고만 싶었다. 잠을 자거나, 아님 그냥 누워있거나. 오죽하면 그렇게 공동체를 외쳐온 사람이 혼자살겠다며 독립을 하게 되기까지 했을까. 사람들의 연락에 가벼운 답장을 하는 것도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러니 자연스레 활동을 하며 생기는 고민들을 혼자 껴안을 때가 많았다.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은 내 고민을 보태지 않아도 이미 너무 바쁘고 힘들어보이고, 또 다른 친구들을 만나기엔 내 고민이 ..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은지도 벌써 반년이 넘었다. 이제 선생님이랑도 많이 익숙해지고, 최근엔 진료 덕분에 내 마음이 많이 평온해진 것 같아서 일주일에 한번 꼬박꼬박 진료를 나간다. 이젠 약도 의심하지 않고 열심히 먹는다. 어제도 진료가 있는 날이었다. 언젠가부터 환자가 무척 많아져서 예약시간에 가더라도 한참을 대기할 때가 많다. 어제도 그랬다. 휴가가 시작된 뒤로는 쫓기는 일정이 거의 없어서 뭐 좀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마음으로 기다리며 대기실의 사람들을 관찰했다. 내가 다니는 병원의 선생님은 아동청소년 전문의라서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주로 많고, 가끔 내 또래의 여성들이 있다. 다른 연령대의 사람들을 본 적은 거의 없다. 내 또래의 남성을 본 것도 드물다. 다들 어떤 연유로 이곳에 오게 되었나 궁금..
동료의 선물로 풍요로운 하루였다. 전망이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하고 야경도 한참이나 보고. 이곳저곳을 오가며 많은 이야기도 나눴다. 나에게 좋은 이야기들도 많이 해주고 나와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보냈지만, 난 어쩐지 부담스러운 마음이 쉽게 사라지지가 않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사람들의 호의를 가슴 깊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 나의 바닥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며 곁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 나의 마음의 습관에 관하여. 사람이 어떠한 마음의 습관, 혹은 마음의 버릇을 가지게 되는 데에는 저마다의 맥락과 역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난 어쩌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곁을 내어주기 어려워하는 마음의 습관을 가지게 되었을까. 누구나 모두 타인과 어느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살고있겠지만... ..
왠만해선 놓치지 않고 읽으려는 소식지나 웹진이 몇개 있다. 들의 소란, 이룸의 소식지, 일다의 글들, 그리고 얼마전 마무리를 맺은 인권오름. 작년 여름에 이룸의 소식지에서 만난 이라는 글은 나를 며칠 동안 울렸다. 한문장 한문장이 너무 공감되어 위로도 되고 또 슬프기도 했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그때 난 성판매경험 여성들의 삶에 많이 짓눌려 있었다. 집결지에 있는 여성들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많은 사연들을 가지고 있었다. 25살에 처음 시작한 이 일은, 그때의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사연들로 내 가슴을 한 가득 메웠다. 버겁지 않은 척하며 애써 담담하게 그녀들의 사연들을 들었고, 그 처연함과 슬픔이 늘 나를 지배했다. 순간순간 이유없이 복받치는 눈물로 난 당황해했다. 아마 그 눈물들이 내 마음을 ..
작년 이맘때였다. 갑자기 울음보가 터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뜨자마자 눈물이 흐르고, 밥을 먹다가 눈물이 흐르고, 회의를 하다가 눈물이 흐르고, 버스를 타고 가다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이 흐르고, 도림천의 산책하는 강아지들을 보다가도 눈물이 흐르고... 내가 마시는 물보다 더 많은 물을 눈에서 흘려보내는 것 같단 생각을 했다. 그 즈음 함께 일하는 동료들로부터 많은 위로와 보살핌을 받았는데, 그때 한 동료에게 다육이 몇개를 분양받았다. 부천에 살 때는 방에 해가 들지 않아 아침이 오는지 벌써 날이 어둑해졌는지도 알지 못하는 나날을 보냈었다. 잠을 오래 자고 일어나도 몸이 찌뿌둥하고, 하루종일 늘어지는 기분이 별로였다. 그리고 2년 뒤, 혼자 살기를 결심하고 집을 구하며 나에게 가장 중요한..
1. 글을 꾸준히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몇 년째 일기장에 끄적거리고 있기는 하지만, 완성된 글을 쓰는 습관을 기르기 위해서는 역시나 오픈된 곳에 글을 쓰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가(?)백수가 된 지 일주일. 이제야 비로소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활동을 하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엄청 자주 했었다. 활동을 하며 생기는 풀리지 않는 고민들을 글로 정리하면서 내 언어를 차곡차곡 만들어가고 싶었지만, 항상 하루 일과를 허덕이며 쫓아다니기 바쁘고 집에 돌아오면 진이 빠져 손도 까딱할 수 없는 컨디션이 되곤 했다. 끼니도 거르는 일이 부지기수였던 일상에서 글쓰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2. 어쩌다 긴 휴가를 갑자기 얻게 되었다. 몸과 마음의 기력이 떨어져 일상을 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