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정신과 진료를 받은지도 벌써 반년이 넘었다. 이제 선생님이랑도 많이 익숙해지고, 최근엔 진료 덕분에 내 마음이 많이 평온해진 것 같아서 일주일에 한번 꼬박꼬박 진료를 나간다. 이젠 약도 의심하지 않고 열심히 먹는다. 어제도 진료가 있는 날이었다. 언젠가부터 환자가 무척 많아져서 예약시간에 가더라도 한참을 대기할 때가 많다. 어제도 그랬다. 휴가가 시작된 뒤로는 쫓기는 일정이 거의 없어서 뭐 좀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마음으로 기다리며 대기실의 사람들을 관찰했다. 내가 다니는 병원의 선생님은 아동청소년 전문의라서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주로 많고, 가끔 내 또래의 여성들이 있다. 다른 연령대의 사람들을 본 적은 거의 없다. 내 또래의 남성을 본 것도 드물다. 다들 어떤 연유로 이곳에 오게 되었나 궁금..
동료의 선물로 풍요로운 하루였다. 전망이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하고 야경도 한참이나 보고. 이곳저곳을 오가며 많은 이야기도 나눴다. 나에게 좋은 이야기들도 많이 해주고 나와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보냈지만, 난 어쩐지 부담스러운 마음이 쉽게 사라지지가 않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사람들의 호의를 가슴 깊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 나의 바닥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며 곁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 나의 마음의 습관에 관하여. 사람이 어떠한 마음의 습관, 혹은 마음의 버릇을 가지게 되는 데에는 저마다의 맥락과 역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난 어쩌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곁을 내어주기 어려워하는 마음의 습관을 가지게 되었을까. 누구나 모두 타인과 어느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살고있겠지만... ..
왠만해선 놓치지 않고 읽으려는 소식지나 웹진이 몇개 있다. 들의 소란, 이룸의 소식지, 일다의 글들, 그리고 얼마전 마무리를 맺은 인권오름. 작년 여름에 이룸의 소식지에서 만난 이라는 글은 나를 며칠 동안 울렸다. 한문장 한문장이 너무 공감되어 위로도 되고 또 슬프기도 했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그때 난 성판매경험 여성들의 삶에 많이 짓눌려 있었다. 집결지에 있는 여성들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많은 사연들을 가지고 있었다. 25살에 처음 시작한 이 일은, 그때의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사연들로 내 가슴을 한 가득 메웠다. 버겁지 않은 척하며 애써 담담하게 그녀들의 사연들을 들었고, 그 처연함과 슬픔이 늘 나를 지배했다. 순간순간 이유없이 복받치는 눈물로 난 당황해했다. 아마 그 눈물들이 내 마음을 ..